뮤지컬 <무선 페이징> (구. 디어 파파, 마이 파이어맨)
Showcase
막연히 뮤지컬이 하고 싶었던 작곡가와 추진력 있는 작가가 만나 난생처음 뮤지컬에 도전했다. 서류심사 때도, 중간평가 때도 애써 기대를 누르며 처음이니까 그저 최선을 다했다는 데 의의를 두자고 서로를 격려했다. 그런 그들의 작품이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3 쇼케이스 선정작 두 편 중 한 편으로 뽑혀 쇼케이스를 앞두고 있다.
연극에서 뮤지컬로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3에 참여하게 된 총 6팀 중 박민재, 공한식 작가 팀은 유일한 ‘남남’ 팀이다. 지원자 중에 딱 둘만 남자이다 보니 두 사람은 별다른 이유 없이 눈에 띄었다. 꽤 친해 보여 오랫동안 알고 지낸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이 의기투합 한 건 불과 1년 반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부터 이상하게 잘 맞더라고요.” 박민재 작가의 말이다. 처음부터 잘 맞았던 던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이도, 사는 곳도, 경력도 차이 나는 두 사람이지만 비슷한 구석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주 활동 무대는 연극이었다. 박민재 작가는 극단을 운영하며 연출과 작가로 활동하고 있고, 공한식 작곡가 역시 극단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독특한 이력도 닮았다. 박민재 작가는 본업은 글 쓰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음악과 관련된 작은 업체 사장이자, 클래식 단체 운영자이자, 대학원생이다. 대학에서 원예생물학을 전공한 공한식 작곡가는 음악이 좋아서 대학 졸업 후 진로를 바꿔버렸다. 음악극부터 단편영화 음악 작업까지 작업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연극이 더 익숙한 그들이 굳이 뮤지컬에 도전하는 이유가 뭘까. 박민재 작가는 “공한식 작곡가가 평소 뮤지컬을 하고 싶어 해서”라는 의외의 대답을 내놨다. 함께 작업했던 작품을 마무리하고 앞으로 또 뭘 할지 고민하던 중 마침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에 대해 알게 됐다. 박민재 작가는 평소 뮤지컬을 해보고 싶다던 공한식 작곡가의 말이 생각나서 나름대로 이것저것 조사해보고 곧바로 “같이 해보자”고 했다. 잘 될지 알 수 없었지만 기왕 시작하는 거라면 규모와 체계가 있는 공모전이 낫겠다 싶어서였다. 공한식 작곡가는 공모전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지만 지금까지 잘 이끌어준 선배를 믿고 곧바로 “그러자”고 했다.
독특한 소재의 랩 뮤지컬
공모전 참여는 금방 합의했지만, 준비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박민재 작가가 이전에 작업했던 대본을 수정하고, 공한식 작곡가가 부랴부랴 곡을 붙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서류를 제출했지만 역시나 탈락이었다. 다행히 추가 지원 공고가 떴고 처음부터 새롭게 작품을 만들었다. 소방관 아버지와 딸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디어 파파, 마이 파이어맨>이다. 소방관이라는 흔하지 않은 소재, 입체적인 캐릭터, 재치 있는 대사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여기에 ‘랩’을 주요 음악 장르로 선택한 점도 눈에 띄었다. 랩 뮤지컬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작곡가가 아닌 작가에게서 나왔다. 랩 경연 프로그램을 보다가 ‘랩’에 제대로 꽂힌 작가가 랩 뮤지컬을 먼저 제안했고, 학창시절 랩을 즐겨 들었던 작곡가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흔쾌히 수락했다. 하지만 마냥 좋아서, 재미있어서 랩을 선택한 건 아니다. 랩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진정성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어울린다는 판단이 먼저였다.
추가 지원 서류를 제출한 두 사람은 이전에 떨어진 경험 때문인지 섣불리 합격을 바라지 않았다. 기대하지 말자고, 이 정도면 선방이라고 서로를 다독였다. 그래서 합격 소식에 둘 다 어리벙벙했다. 공한식 작곡가는 덜컥 겁부터 났다. “저희는 뮤지컬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신인 중의 신인이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큰 공모전에 뽑히고 주목을 받으니까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작가님한테 어떻게 하냐고 많이 징징거렸죠.” 박민재 작가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작곡가에게 잘 할 수 있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지만, 정작 자신도 뮤지컬이 처음이라 걱정이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배우면서 차근차근 작품을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선정작으로 뽑힌 후 중간심사까지 약 3개월 동안 두 사람은 부지런히 배우고, 작품을 계속 발전시켰다.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의 강의, 주변 사람들의 조언 하나하나가 다 배움이었다. 뮤지컬이 처음인 두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음악’이었다. “뮤지컬은 연극과 달리 음악을 위한 자리가 있어야 하고, 그 자리에 딱 들어맞는 음악을 찾아야 하거든요.” 작가에게 음악이 끼어들 자리를 고민하는 것이 큰 숙제였다면, 작곡가에게는 ‘랩’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공한식 작곡가는 뮤지컬을 알면 알수록 뮤지컬에 랩을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한다. “랩은 가사가 많이 반복되고 라임에 따라 운율을 맞추는데 이게 서사 진행에 방해가 되더라고요. 랩만 등장하면 극이 완전히 멈춰요. (웃음) 이걸 해결하려고 공부하면서 방향을 찾고 있는데… 우선은 노래와 랩을 섞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작곡이든, 극작이든 최선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하다 보니 두 사람의 팀워크는 그 어느 때보다 최고다.
도전 그리고 또 다른 도전
끈끈한 팀워크로 치열하게 발전시킨 <디어 파파, 마이 파이어맨>은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3 쇼케이스 선장작으로 뽑히는 기쁨을 누렸다. 그런데 쇼케이스를 앞두고 두 사람은 부족한 시간을 쪼개가며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중이다. 중간심사 후 여러 사람과 상의했고, 고심 끝에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로 했다. 처음부터 지적되었던 가족 드라마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웠고, 작가 역시 경험하지 못한 일을 뮤지컬이란 낯선 장르로 풀어내는 게 부담됐다.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후회는 없다. 새로운 작품 <무선 페이징>은 의무소방관과 래퍼가 만나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주인공이 20대로 바뀌면서 작품의 주제는 꿈과 우정에 맞춰졌다. “확실히 직접 겪은 걸 쓰니까 글의 밀도가 높아지더라고요. 아직 결말을 어떻게 할까 결정하지 못했지만 거의 완성했어요.” 실제 의무소방관으로 근무했던 박민재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작품 곳곳에 녹여냈다. 조금 쑥스럽긴 하지만 부담이 줄어서 글 쓰는 게 편해졌다.
모든 것을 바꿨지만 딱 한 가지, ‘랩’은 그대로다. 랩에 대해 주변의 우려와 만류에도 끝내 뜻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작품을 바꾼 것과는 대조적이다. “애초에 저희가 그냥 뮤지컬이 아니라 랩 뮤지컬을 해보자고 했던 거라서 지금 랩을 뺀다면 지금까지의 작업이 의미가 없어지게 되니까요.” 박민재 작가는 랩 뮤지컬은 애초에 자신들이 지향했던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설명한다. 공한식 작곡가는 극이 바꾸면서 오히려 랩과 접점이 더 늘어났다고 한다. “<무선 페이징>의 두 주인공은 시스템이나 환경 속에 제약이 있는 인물들이에요. 그들이 그 제약을 뛰어넘어서 진솔한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랩만큼 잘 어울리는 음악은 없는 거 같아요.” 작가가 글을 쓰는 동안 작곡가는 레퍼런스를 찾아보고 소스를 만들어놨다가 장면이 완성되면 바로 곡을 쓴다. 극작과 작곡이 거의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덕분에 작품도 빠르게 완성되고 있다.
두 사람에게 첫 뮤지컬 작업은 매일매일 한계를 경험하게 할 만큼 힘든 작업이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쇼케이스를 앞둔 근황에 관해 두 사람은 장난 반, 진담 반 근황을 ‘일상파괴’라는 말로 답한다. 매일 전쟁처럼 글을 쓰고 곡을 쓰고 있지만, 작품이 완성되는 만큼 성취감도 커진다. 지난한 시간이 지난 후 쇼케이스를 마치고 나면 기분이 어떨까. 공한식 작곡가는 무조건 푹 쉴 거라고 한다. ”전 공연 끝나자마자 작가님한테 힘들었다고 징징거릴 것 같아요. 그리고 하루 이틀 푹 자고 난 다음에 저 자신에게 너무 고생했다고 말할 거에요.” 박민재 작가는 오히려 담담할 거 같다고 했다. “예전엔 공연이 딱 끝나면 너무 행복하고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무덤덤해지더라고요. 공연이 끝나면 기쁘기도 한데 이제 또 뭐하지? 그런 생각을 해요. 그날도 ‘끝났구나. 이제 또 뭘 시작해야겠구나.’ 그럴 거 같아요. 근데 당장 뮤지컬을 다시 하진 못할 거예요. (웃음) 힘들기도 했지만 또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많다는 걸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됐거든요. 앞으로 좀 더 진지하게 뮤지컬을 배우고 싶어요. 극작뿐만 아니라 연출도 궁금해요.”